5. 나의 길은 내가 알아서 정한다.
아이디어, 협상 방안을 짜내기 위해 회의를 하면 무슨 좋은 생각 없어? 라는 말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참여자들이 신경을 집중해서 이런저런 방안을 쏟아내고 나면 일순간 정적이 감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또는 하나씩 해보고서 좋은 것을 고를 수는 없다. 지도자는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조금 쉬었다 생각해봅시다. 또는 좀 더 따져보고 결정합시다 라고 말하며 지금 까지 열띤 분위기를 냉각시켜버린다. 책임이 무겁더라도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내려야 하지만 그 무게로 인해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바로 지도자가 다른 사람이 나아갈 길을 막고서 못 나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갈 길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익숙한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 위험 부담이 많은 길은 사람을 더욱 얼어붙게 만든다.
벤치마킹이다. 선진화다. 선진기법이다. 첨단기술이다 해도 사람이 그것을 100퍼센트 수용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결국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유학을 조롱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사람들은 유학의 유를 유나 나 자와 연관지어 유약하다거나 나약하다는 이미지를 퍼뜨렸다. 이 구절을 보면 적어도 공자는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할 사람이지 주저하다가 뒤로 벌어질 사람은 아니다.
공선생이 이야기했다. 사람이 길을 넓혀가야지 길이 사람을 넓힐 수는 없다.
홍은 넓다, 넓히다는 뜻이다. 도로가 좁고 교통량이 많아지면 2차선을 4차선으로 넓히고 또 모자라면 4차선에서 8차선으로 길을 넓히게 된다. 사람이 1센티라도 넓혀야 길이 넓혀지지 도로가 스스로 좁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넓힐 수는 없다.
도는 구체적인 길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추상적 의미를 가리킨다. 홍도는 가치가 적용되는 세계를 넓힌다는 뜻이다. 미국이 완전히 100퍼센트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세계 경찰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가정해보자. 독재자가 자국의 시민을 학살한 경우 미국이 그 나리에 군사적으로 개입해 독재자를 축출한다면 그것을 홍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최고의 풍속화가이자 산수화에 능했던 김홍도의 이름도 이 구절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인은 무슨 뜻일까? 쉬운 듯하지만 여기서 인의 뜻을 알아야 구절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움켜쥘 수 있다. 이 인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의 개별적인 사람이 아니라 종으로서의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저임금을 바탕으로 원자재를 수입해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해서 먹고살 길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 중국을 비롯해서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제 싸고 좋은 물건이 아니라 비싸지만 흉내 낼 수 없어 살 수 밖에 없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기준을 만드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 훔치거나 베껴서는 순간을 넘어 설 수는 있지만 긴 시간을 버릴 수는 없다. 나는 정치든 경제든 무슨 일만 있으면 회국사례가 어떠하다든지 다른 나라는 어떠하다는 말로 앞길을 찾으려는 시도를 보면 우리가 아직도 멀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인재가 필요한데도 사람을 암기 위주의 입시에 내몰고 영혼 없는 외국어 공부에 올인하게 만들고 있다. 공자와 비슷한 취지의 말을 순자도 뛰어난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 지도자의 길에서 그는 말했다. 유난군 무난국 유치인 무치법 글자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난군만 있지 난국은 없다. 지인만 있지 치법은 없다. 좀 더 살을 보태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어지럽히는 지도자가 있어서 나라가 어지러운 것이지 처음부터 어지러운 나라는 업다. 제대로 다스리는 지도자가 있어서 나라가 다스려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잘 다스린 나라는 없다. 우리는 이제 자동판매기에 주기적으로 상품을 바꾸는 사람을 키워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자동판매기를 만드는 사람의 기를 펼치게 할 것인지 선택의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나 학교 부모는 말로는 후자를 바란다고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늘 전자에 머무르고 있다.
6. 무슨 일이라도 허투르 생각하고 보지 마라
해야 할 일이 주어질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에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일을 피해 다니다가 정작 일이 닥치면 우왕와왕하며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기모유형이 있다. 둘째 일의 특성을 요모조모 뜯어보고서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듯 철저하게 준비하는 호모유형이 있다. 셋째 앞뒤 재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렛츠고를 외치다가 현장에서 아차!하며 후회하는 무모유형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라지만 사람이기에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사람은 일과 그 결과사이에서 그렇게 조바심내고 초조해하며 그렇게 궁금해하고 불안해한다. 조바심을 달래고 불안을 잠재우느라 괜히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될 것 같아? 라고 운을 떼보기도 하고 난생 처음으로 점을 쳐보기도 한다. 공자는 사람이 일을 앞두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바람직한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관점은 신적 관점이 아니라 철저히 보통사람의 마음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이 삼군 참모총장으로 전군을 지휘한다면 누구랑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선생이 대꾸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으려다 물려 죽거나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허무하게 빠져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사람과 나는 함께하고 싶지 않다. 반드시 할 일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고 미리 꾀를 내서 일을 잘하려는 이와 함께할 것이다. 자로는 원래 무사 출신이었는데 공자를 만나서 그의 제자가 된 뒤에 보디가드로서 스승의 신변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는 스승을 완전히 닮고자 했지만 끝내 그렇게 될 수 없었던 인물이다. 열의로 무장했지만 사려가 뒤따라주지 않았고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여는 함께 더불어의 부사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참여한다 함께하다는 동사로 쓰이고 있다. 폭은 갑자기, 사납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무기 없이 맨손으로 싸우다는 뜻이다. 임은 마주하다, 내려다보다는 뜻이다. 구는 두려움 두려워하다는 뜻이다. 모는 꾀, 계책, 꾀하다는 뜻이다. 폭호빙하는 공자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시경의 높은 하늘에 나오는 시구를 재조합한 말이다. 이 말은 위험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용맹무쌍함을 옳고 있지만 공자는 부정적으로 비평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적 용기를 무턱대고 예찬하지 않고 늘 예의라는 사회 제도나 정의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예의의 규제를 벗어난 용기가 당시에 나타난 사회 혼란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자는 폭호빙하를 가지고 은근히 다혈질적이어서 물불 가리지 않는 자로에 비유하고 있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바로 리더십과 직결된다. 공자가 생각하기에는 군사를 운용할 때 제 아무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전쟁은 한 개인의 생명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전투에서 용기를 발휘하는 것만큼 전투에 앞서 전략과 전술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싸워서 진 뒤에 앞으로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라고 후회할 게 아니라 싸우기 전에 후회할 일을 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공자는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일을 앞두고 가볍게 생각할 게 아니라 두려워하고 무모하게 덤벼들 게 아니라 계획을 세워서 결실을 이루도록 권고하고 있다. 공자의 이러한 사고는 손자병법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손자는 공자의 호모라는 말을 이어받아서 공격을 계획한다는 모공에서 널리 알려진 말을 했다.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알면백번 싸우더라도 결코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백번 싸워서 백번 이기는 것은 최선의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 병사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최선이다. 우리가 흔히 백전불패라고 알고 있는 구절은 잘못이고 원문엔 백전불태라고 되어 있다. 패는 싸워서 지는 것이고 태는 지기 이전의 상태보다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즉 지피지기를 하면 위험한 상황에 조차 놓이지 않으니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맥을 보면 왜 패가 아니라 태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공자와 자로의 관점 차이는 진나라 붕괴 이후 패권을 다투었던 유방은 항우의 리더십 차이에 대입할 수 도 있다. 항우가 압도적 전력을 바탕으로 저돌적인 공격을 일삼았다면 유방은 전력의 일세를 시인하고서 국면마다 자신을 낮추면서 힘을 키웠다. 군사의 리더십으로 볼 때 자로가 항우에 가깝다면 공자는 유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7. 옛 것을 들여다 보면 결국 그 속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 있다.
요즘은 바뀌어야 산다며 혁신과 창조를 부르짓는 변화의 시대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다. 한 사람이 반대되는 두가지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바뀌어야 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바뀌어야 하는 주체인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변화의 실타래를 풀어갈 것인가? 첫째 바꾸는 척하며 변화의 목소리가 줄어들 때까지 숨죽여 지낸다. 둘때 자신을 내버리고 앞서가는 곳을 훔쳐 보며 따라간다. 셋째, 자신을 돌아보고서 그 안에 실마리를 찾는다.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변화가 시늉으로 그칠 수도 있고 제대로 된 개선을 낳을 수도 있다. 프로스포츠에서 모든 팀은 우승을 목표로 정규 리그를 치른다. 리그가 끝나고 나면 구단주는 내년 시즌에 더 좋은 성적 또는 우승을 거두기 위해서 재정지 계획을 세운다. 감독을 바꾸기도 하고 팀끼리 선수를 바꾸기도 하며 신인 선수를 데려 오기도 한다. 내가 뱐화의 시기에 서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공자는 옜것과 새것의 변증법적인 관계로 풀어가고 있다. 공선생일 들려주었다. 옛 것을 익혀서 새것을 뽑아 낸다면 충분히 스승이 될 만하다. 온은 데우다. 익히다라는 뜻이다. 온고의 뜻이 잘 들어오지 않으면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갓 한 새밥처럼 뜨끈뜨끈해지는 것을 떠올리면 충분하다 .그래도 의미가 잘 들어오지 않으면 묵은 밥을 익혀서 식혜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좋겠다. 사는 군대, askg은 사람 벼슬아치 등 집합명사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스승, 리더의 뜻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공선생이 혁신과 창조의 변화를 변증법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는 새것을 도입하기 위해 옛것을 철저하게 내팽개치거나 옛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새것을 말하지 않는다. 새것은 늘 새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얬것으로 바뀌어간다. 새것은 얫것 속에 들어 있으면서 옛것의 한계를 해결하고서 등장하는 것이다. 흔히 새것 하면 옛 것을 철저하게 두드려 부수고 그 자리에 전혀 다른 것이 자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공자의 말은 약간 당혹스러울 수 있다. 온고지신을 유선 전화기에 무선 전화기로 다시 휴대폰으로 이어지는 통신의 진화와 견줘서 생각해보자. 유선 전화로는 전화기가 있는 장소에서만 통화할 수 있다. 이에 사람들이 선이 없어도 전화기에서 조금 떨어져서 통화 할 수 있으므로 좋겠다고 생각해서 무선 전화기가 나왔다. 다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통화하고 싶다는 생각에 따라 휴대폰이 나왔다. 사실상 유선 전화기 안에 다움에 나타날 무선 전화기의 모습이 들어 있고 또 무선전화기 안에 휴대폰의 모습이 들어 있는 것이다. 즉 휴대폰이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무선 전화기가 나아갈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옛 것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새것이 필요하므로 새것은 이미 옛 것 속에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과거가 현재와미래의 얼굴인 셈이다. 창조는 옛것의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면서 새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온고지신의 과정에서 이룩된다. 이런 점에서 온고지신은 대학에서 말하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일신의 진화와일맥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새것창조를 슬로건처럼 너무 큰소리로 외친다. 그리하여 옛 것이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괴물이나 암세포인양 혐오하게 만든다. 또 옜것을 두드려 부수거나 깡그리 없애버리는 것을 능사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아니 오산을 넘어서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다. 진정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상대를 없애기 위해서 변화와 창조를 외치는 것이다. 1993년에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는 말이 언론지상을 뜨겁게 달궜다. 사실 이 말도 변화의 절실함, 질 위주의 경영 상품생산에서 모방을 벗어나 선도를 하자는 취지로 받아들이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 하지만 그 말 자체는 창조를 일궈낼 변화의 방향이나 원칙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침을 던져주지 못한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기업 경영이면 기업에 초점을 둬야지 그와 상관없는 사생활을 끌어들이느냐, 기업가가 사람의 독립적인 정신 세계에 간섭하느냐 등의 다양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변화가 필요하면 사람을 자극하는 구호가 아니라 방향과 의미를 담아내는 우리시대의 고전적인 어록을 만들면 좋겠다. 없다면 온고지신은 변화를 지도하는 말로서 기억할 만하다. 변화는 무조건 왁자지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알차게 일구구는 것이다. 혁신과 창조의 변화는 외양을 번지르르하게 고치는 것이 아니라 내실을 굳건하게 다지는 것이기 떄문이다.
8. 길을 나누어서 생각해라.
나라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있으면 지역별로 정당별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4대강 사업하면 한족은 홍수를 예방하며 고용 효과가 크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족은 고용효과도 미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환경 재앙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런 형태는 우리나라 정치를 후진적인 상태로 머물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공자는 하나의 사안에 대해 첨예하게 맞서는 극단적인 두 주장만 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양극단 사이에 수없이 많은 창조 적이며 생산적인 길이 있다고 본다. 날뛰던 소를 제압하려면 두 불을 꽉 잡고서 소의 운신을 제어하면 된다. 공자는 우리에게 날뛰는 소가 무서워서 저 멀리 구석에 있지 말고 그라운드에 나와서 극단의 두 불을 잡으라고 권유한다. 그게 '고기양단'의 길이다.
공 선생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많이 아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참으로 아는 게 없다. 못난 사람이 검은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뭔가를 물어 본다면 나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해진다. 하지만 나는 물음이 갈 수 있는 두 갈래를 하나하나 캐물어서 의문을 다 풀어줄 뿐이다."
지는 지식, 앎이란 명사로 쓰이지만 문맥상 지식 이 많다 또는 지식이 없다로 옮겼다.
공자는 누군가 질문을 하면 상대방이 시원해지게끔 대답해주곤
했다. 그 결과 당시 사람들은 공자를 모르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아 는 사람으로 간주한 듯하다. 하지만 정작 공자 자신은 아는 것이 없다며 세인들의 기대를 부정해버린다. 공자는 모든 것을 알아서 사람들이 질문하면 대답을 하나씩 끄집어내주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질문을 받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측면을 조개고 나누어서 생각의 갈래를 정리해주는 것이다. 상대방은 공자와 이야기를 나는 면 이전과 달리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므로 공자가 모든 것을 아 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부는 사전적으로 식전이 좁고 무식한 사람을 가리킨다. 문 맥으로 보면 비부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공자에게 접근해서 그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렇게 보면 비부는 고집이 세서 자신의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완부와 같다. 이처럼 근거 없는 확신범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고는 두드리다, 때리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묻다, 끌어당기다 의 뜻으로 쓰였다. 양단은 두 극단을 가리킨다.
예컨대 남한이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수단으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경험을 활발하게 하자는 쪽도 있고 둘을 연계시켜서 정치적 변화가 없으면 북한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자 는 쪽도 있다. 또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태아도 생명이므로 낙태 를 허용할 수 없다는 쪽도 있고 산모의 의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쪽도 있다. 양극단이 팽팽하게 맞서면 상대를 굴복시키는 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럴 때 공사라면 어느 한쪽이 낫다고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 라 각각이 가진 문제집을 들춰내서 보다 하리적인 결론을 내리도록 왔다. 그것이 바로 고기양단이다. 어느 한국을 절대 진리로 민고 조금의 의심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양극단이 만날 지점은 없다. 절대 진리인 양 말하지만 사자의 눈으로 극단을 들여다보면 각각 허점과 한계가 보이게 된다.
양극단의 어느 한쪽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양극 단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미쳐 날뛰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동의 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만이 아니 라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들에게 다음을 강하 게 물어볼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특정 집단의 이해를 국 민의 이해인 양 여론을 호도하지 않았는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 지 않았는가? 양극단의 주장을 합치시킬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모든 지혜를 짜내는 데 게으르지 않았는가?
분명히 갈등이 있는 것을 없다고 목소리 높이거나 갈등을 푸는 창조적인 길을 외면하고 갈등을 흥행을 위한 전가의 보도로만 사용 한다면, 우리 사회는 갈등 너머의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9. 좋은 곳은 골라서 따라가야지.
사람의 일생은 '경쟁'의 연속이다. 정자는 수정을 위해서 경쟁하고 태어나서도 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고 도태만 있다"는 생각이 만고의 진리인 양 삶과 사회의 전 영역에서 경쟁을 도입하고 있다. 경영 평가는 기업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대학이나 공기업 나아가 정부기구에서도 한다. 그 뒤에 구조조정이나 조직개편이 뒤따른다. 이어서 살아남은 자와 떠나는 자의 운명이 엇갈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