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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논어1

by 젠틀블랙홀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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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못임을 알았을 때는 주저하지 마라

여성 또는 연예인이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라고 한다. 감추고 싶은 것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 방송 프로그램은 색다른 시도를 했다. 가능한 한 단점을 감추려는 속성을 갖는 연예인이 화장기 없고 푸석푸석한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알리고 싶지 않은 사적 비밀까지 무의식중에 밝힌 것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역설적으로 그걸 보고 그들에게 더 정감을 느끼고 호의를 갖는 모양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단점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뜻하지 ㅇ낳게 단점이 드러났으면 재빨리 감추려고 한다. 예컨대 힐을 신은 여성이 시내버스를 급히 타려 하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고 하자. 그이는 어디를 다쳤는지 확인하기 보다는 자신이 넘어져서 우스꽝스럽게 되었다는데 더 민감해져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한다. 숨기려고 해서 영원히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숨기부터 하고 고칠 섯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숨길 일이 또 생길 수 있다. 정녕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공선생이 이야기 했다. 자율적 인간이 무겁게 굴지 않으면 권위가 서지 않고 그럴 경우 배운게 있더라도 굳건하지 않게 된다. 자율적 인간이라면 충실과 믿음을 자기 행동의 주인으로 삼고 자기만 못한 자를 친구로 사귀지 말 것이며 잘못을 저지를 경우 반성하고서 고치는 일을 피하지도 싫어하지도 말라.

 

중은 무게가 무겁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무겁다. 가볍게 굴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낸다. 위는 위엄, 위세, 권위를 나타낸다. 고는 굳다. 단단하다는 뜻이다. 충은 진심, 충실, 진실의 뜻이다. 신은 믿다, 진실하다 진실의 뜻이다. 무는 기본적으로 없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하지 말라는 물의 뜻으로 쓰인다. 우는 벗, 벗하다는 뜻이다. 과는 지나치다, 허물, 죄의 뜻이다. 탄은 꺼리다. 화내다. 주저하다라는 뜻이다.

 

용기 하면 포탄이 쏟아지고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터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하면서도 뒤로 숨고 만날 기회가 생겨도 피해다니느라 말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권에서는 자신의 단점이 사람들 앞에서 낱낱이 벗겨지는 것을 죽음보다는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과실이나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면 고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단점이 드러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면서도 그것을 고치는 데는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다. 그래서 공자는 힘주어 말했다. 잘못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을 하고서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게 바로 진짜 잘못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공자가 왜 안연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공자의 평가에 따르면 안연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은 불이과는 아니더라도 불십과라도 되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안연처럼 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단점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잘못을 마주하고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잘못을 고칠 수 없다.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고서도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다음에 잘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다음에도 늦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만 다음에는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회개의 굳센 의지가 생겨난다. 그 과정에서 일의 진행을 바둑의 복기처럼 천천히 되돌아보면서 언제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를 샅샅이 찾아내게 되고 다음에 그것이 나타나려고 하면 굳세게 쳐내서 이전의 문제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술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면 술자리 후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를 입은 상대에게 자신이 언제 어떤 잘못을 했는지 물어야 한다. 이로써 정확하게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이 끝나는 것이다. 다음에 술을 마실때 이전과 같은 징후가 엿보이기 시작하면 아예 술을 마시지 않거나 상대의 양해를 구해서 자리를 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과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백과 아니 천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나에게 잘못이 있을 때 만만이 보이는 광장에서 발가벗은 채로 서 있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한다면 불이과에 가까워질 것이다.

2. 고상함의 길을 가려면 외로워 보이나 그렇지 않다. 

사람을 좌절하게 해서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여럿이 있겠지만 고독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도 없다. 고독에도 여럿이 있다. 첫째 처벌을 받아서 누구도 나를 아는 척하지 않는 고독이 있다. 둘째 함께 출발했지만 애써 노력해도 자꾸만 뒤로 처지면서 겪는 고독이 있다. 셋째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타당한데도 누구의 동조를 받지 못해 버려지는 느낌이 드는 고독이 있다. 넷째 시대를 너무 앞서 갔던 탓에 세상으로부터 따뜻한 눈길을 받지 못하는 처절한 고독이 있다. 고독이 깊어지면서도 길이 나뉜다. 고독에 넘어져 서서히 무너지는 경우도 있고 고독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는 경우도 있다. 공자는 고독을 심하게 앓는 모양이다. 그는 고상함에서 고독을 이겨내는 힘을 찾고 있다.

 

공선생이 들려주었다. 고상함의 길을 외롭지 않다. 반드시 함께하려는 이웃이 있기  마련이다.

고로 외롭다. 홀로의 뜻이다. 필은 반드시 꼭의뜻이다. 린은 이웃, 이웃하다의 뜻이다.

덕은 우리말에서 유덕하다, 덕목, 덕성,덕육,덕장처럼 널리 쓰이고 있다. 여러 가지 용례가 있는 만큼 그 의미도 다양하다. 개념의 의미를 쉽게 알기 어려울 경우 반대 개념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덕은 력, 리와 반대로 쓰인다. 력은 육체적이거나 물리적인 힘을 가리킨다. 리는 물질적이거나 금전적인 소득을 가리린다. 덕은 물리적인 힘과 다르지만 사람을 움직이고, 금전적 소득으로 확삲되지 않지만 사람이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특징을 갖고 있다. 덕은 고상한 사람에게 깃들어 있는 사람의 품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고상함은 고고함으로 비춰져서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으면서도 지속하지 않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닮고 싶은 바람을 일으키긱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이런 행태도 결국 물질적 측면에서 고상함을 소비하려면 변형된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고상함의 덕을 너무 도덕적인 인격으로 한정시키지 말고 일을 추진하는 스타일, 주위사람과 구별되는 개성 변화를 일구는 지도력 사람과 어울리는 태도 등으로 넓게 이해하자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때 합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을 하면 누구나 호응하리라 예상하지만 실제로 냉담한 반응에 적잖게 놀라기도 한다. 이렇게 상처를 받다보면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하자고 총대를 메기보다는 뒤에서 따라가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주위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홀로 떨어져 있는 고독을 겪는 것이 너무나도 버겁기 때문이다. 공자도 자신이 걸어서 가는길이 올바르다고 확신했지만 시대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기는 커녕 냉담한 거절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았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간다면 어딘가에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며 따뜻한 말을 건네줄 사람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는 괜한 허상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삶의 실상이다. 공자는 역시 고독의 샘물을 적지 않게 마셔본 듯하다.

세상살이에서 홀로 떨어지는 고독을 싫어하다보니 우리 사회에서 제 한 몸을 지키는 처세술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를 두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땅에 납작 엎드려서 꼼짝하지 않는다며 복지부동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복지부동을 고사성어처럼 알고 있지만 사실 출처는 군사 용어다. 핵폭발이 일어날 징후가 있으면 지하 대피소로 피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럴 여유가 없을 때는 핵폭발의 섬광을 눈으로 보지 말고 귀를 막고서 몸을 엎드린 자세를 하는데 이때 배를 땅에 붙이지 않고 떼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배를 지면에 붙이지 않아야 폭발의 충돌을 흡수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자세가 바로 복지부동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복지부동을 말의 출처나 원의로부터 아주 동떨어지게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복지부동은 정권교체느 인사발령이 있을 때 공무원 등이 문책당할 일을 하지 않거나 사소한 일조차 꺼리며 일손을 아예 놓고 있는 행태를 가리킨다. 즉 복지부동은 무사안일, 보신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복지부동이란 말을 들으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원래 사람이 나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개인의 영웅심에만 호소할 수 없다. 우리가 주위 환경에 좌우되지 않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정권 교체 등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의레 복지부동이란 말을 듣지 덕불고라는 믿음을 갖지 못할 것이다.

3.  항상 두번씩 검토한다.

사람은 선택 앞에서 서성거린다. 물론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선택하기가 쉽다. 선택지 중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고르면 되니까, 하지만 인간은 신과 같은 예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선택을 재빨리 하지 못한다.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왔고 2011년 김해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지휘했던 유시민이 생각난다. 흔히 그를 두고 예선에서는 이겨도 결선에서 진다고 한다. 그는 너무 생각을 많이 한 것이 아닐까? 선택에 미적거리는 사람의 심리는 복잡한 듯해도 단순하다. 이것을 선택하자니 저것이 더 나아보이고 저것을 하자니 이것이 더 나아보이고... 이런 식으로 생각이 이랬다저랬다 하다보니 둘 중 하나를 고르기가 참으로 어렵다. 서택의 무게에 짓눌리다보면 차라리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것과 저것 중에 하나를 꼭 집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하지만 선택의 고통을 겪지 않으려는 책임자만큼 무능한 사람은 없다. 공자는 불확실성 앞에서 결단을 미루는 이를 위해 숙고의 횟수를 줄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계문자는 사안을 두고 세 차례 검토한 뒤에 비로소 실행에 옮겼다. 공 선생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한마디 했다. 두차례 검토하면 괜찮다.

 

계문자는 공자가 생존하던 당시 노나라 국정을 실질적으로 쥐락펴락하던 인물이다. 제도상으로 보면 노나라에서는 제후가 최고 책임자였다. 하지만 당시에 제후는 허수아비 신세였고 대부가 대대로 지위를 세습하면서 실력자로 군림했다. 

재는 보통 부사로 두 번, 다시의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두 번 하다로 쓰인다. 시는 지시대명사로 이것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하다면 곧 ~하다 식으로 쓰인다.

자칫하면 위 구절은 선택과 결정의 횟수 차이를 말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3과 2는 실제 차례라기보다 서너 차례나 한두차례 등 대략적인 정도를 나타낸다. 우리가 흔히 결정을 앞두고 언제 결정이 나나요? 라고 물으면 한두 번 더 생각해보 결정합시다. 대답한다 이때 한두번은 꼭 한번과 두번의 횟소라기 보다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는 보류의 뜻이다. 이를 한두 번이 아니라 서너 번이라고 하면 결정이 차일피일 늦춰지면서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요즘 좀 변했지만 예전에는 중국과 거래를 하다보면 결정이 늦어져서 속 터지는 일이 많았다. 

결정의 상황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가지를 두고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두가지 이상의 방안을 두고서 더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정은 신중하게 내려져야 하지만 ㅇ그렇다고 늦엊져서는 안된다. 결정이 늦어지면 개인이든 단체든 지침이 없어지고 일이 진행되지 못해 모든 상황이 정지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시간의 신이자 기회의 신으로 카이로스가 있다. 그는 생김새가 사람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앞머리는 덥수룩하고 무성한데 반면 뒷머리는 대머리다.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손에는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기회는 앞머리가 무성해서 누군지 알아채지 못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물론 알아본다면 기회를 잡아채기란 쉬울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기회가 자신의 옆을 지나쳐도 기회인지 모른다. 그런데 지나친 뒤에 혹은 기회인 듯 싶어서 붙잡으려고 해도 털 하나 없는 뒷머리라 잡지 못하고 놓치기 십상이다. 날개는 기회가 그만큼 빨리 사람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뜻이리라. 그럼 저울과 칼은? 저울은 기회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헤아리는 것과 관련이 있고 칼은 우물쭈물 미적거리지 않고 기회다 싶으면 단칼에 결단을 내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 기회를 잡으려면 저울의 혜안, 칼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공자가 세 번이 아니라 두 번하라고 말한 것은 모든 상황에서 그렇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멈칫멈칫하면서 주저하는 마음을 칼로 싹둑 잘라내라고 주문하는 것이리라.

4. 많이 경험하고 들어봐야 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서둘러 지나가지 못하고 꼭 멈췄다가 가는 경우가 있다. 판단을 내려야 할 때다. 점심 때 짬뽕과자장면을 두고서도 머뭇거려러 빨리 골라. 라는 다그치는 소리를 듣는데 인생과 사업이 걸린 문제라면 주저하기 마련이다. 판단을 앞두고 사람은 세가지 보인다. 첫째, 길게 생각할 게 없다는 듯이 시간적 여유가 남았는데도 서둘러 결론을 내는 속단형이 있다. 둘재 모든 문제를 검토할 마지노선을 쳐놓고 그 안에서 꼼꼼하게 따져서 논의를 끝내는 시한형이 있다. 셋째 시한이 다가와야 겨우 움직이지만 결국 시한을 넘겨서 질질 끌다가 더 이상 늦출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결정하는 유예형이 있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낳았던 김우중은 1993년에 세계경영을 부르짖으며 2000년까지 해외법인과 사업장 등 1000여 개 국제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한국이 가공수출 단계를 벗어나야 했더 시점에서 세계경영은 적절한 경영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속도와 자본 그리고 방법이었다. 필요한 자본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그는 적자를 흑자로 바꾸는 분식회계를 했고 해외차입금을 도입하면서 불법을 동원했다. 이로 인해 대우그룹은 해체되었고 수만은 노동자는 실직의 고통을 겪었으며 그 자신도 2006년에 유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샐러리맨의영웅에서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추락했다. 이는 그가 내렸던 수많은 판단들의 귀결인 셈이다. 참으로 판단은 어렵고 무겁다.

자장이 관직 생활의 자세를 물었다. 공선생이 일러 주었다. 여러소리를 들어보고서 미심쩍은 것은 옆에 제쳐두고 그 나머지를 아주 조심스레 말하라. 그러면 잘못을 덜 하리라. 여러가지를 찾아보고서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옆에 제쳐두고 그 나머지를 매우 조심스레 실행하라. 그러면 뉘우치는 일을 덜 하리라. 말에서 잘못을 덜 하고 실행에서 뉘우치지를 덜 하면 안정된 직장 생활이 그 가운데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궐은 보통 대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빼놓다. 유보하다는 뜻이다. 과는 적다는 형용사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적게하다 줄이는 뜻이다. 위의 대화는 제자 자장이 관직의 자세를 묻고 공자가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꼭 관직 생활에만 적용되지 않고 다른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만하다.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특히 궐, 신, 과, 등 소극적인 어휘가 눈에 들어온다. 공직이란 국민을 상대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자리로서 책임이 무겁다.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뒤집기도 어렵거니와 잘잘못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니 쉽게 말하고 빨리 처리하고서 여기저기 부딪히기보다는 돌다리도 두드려 가는 심정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의심할 게 없는 것은 그만큼 분명하다는 뜻이므로 바람직하다. 반면 의심이 없다는 것은 지성이 박약해서 사태를 사방팔방으로 뚫어보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까닭 모를 불신을 위한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을 위한 의심은 섣부른 판단의 가속을 늦추는 브레이크와도 같다.

오늘날 이 말이 한국사회에서 잘 어울리는 곳이 있다. 언론과 검찰이다. 상업성을 위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ㅇ낳은 기사를 내보내서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주는 경우가 ㅁ낳다. 또 사법적 진실을 첨예하게 가리는 와중에도 검찰이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을 유도하고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직 대통령의 자살도 여과되지 않은 사실의 누설과 관련이 된다. 아니나다를까! 조선일보사 사옥 입구 벽면에 확대된 신문 창간호에 김윤식이 쓴 글씨가 있다. 이는 단순히 써놓고 끝낼 것이 아니라 기사 작성과 편집 과정에서 굳건하게 지켜야 할 계율이다. 판단한자를 잘 들여다보자. 둘 다 끊는 도구가 있다. 판에는 칼 도가 있고 단에는 도끼 근이 있다. 그만큼 판단이 어렵기도 하지만 일단 내려버리면 앞과 뒤가 판연히 달라진다는 말이다. 판단이 실수로 이어지는 것은 칼을 너무 일찍 휘두르거나 도끼를 너무 늦게 내리찍는 데서 생긴다. 복수의 생각 중에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게 검토하기란 사람으로서 쉽지도 않고 긴장감을 버티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더 벼텨서 검토해야 하는데 시간의 무게와 외부 압력에 밀려 중심을 놓치면 섣부른 판단이 나오게 된다. 반면 복수의 생각을 두고 결정의 무게와 결과의 엄정함을 스스로 굳건하게 견디지 못하고 전을 굽듯이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느라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둘 다 스스로를 이기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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