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코너에 몰리고도 깨우치지 않는다면
보통 외국에 나가면 먹는 것은 물론이고 언어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꼭 외국어를 공부해야지!"라고 굳은 결심을 한다. 하지만 다음 여행에서 우리는 얼마나 같은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차를 몰고 가다가 고장이 나면 보험회사 서비스센터에 연락하게 된다. 늦은 밤이라 면 기다리는 시간이 여간 힘들지 않다. 그런데 서비스를 받고 보니 조금만 관심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때는 차량 정비에 신경을 좀 써야지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이와 다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젊은 검사가 사진 수사를 지휘하다가 실수를 한 나이 많은 경찰관에게 필요 이상으로 면박을 주었다. 그 경찰관은 그날로 공부를 시작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나중에 검사가 되었다. 결과로 보면 젊은 검사는 늙은 검사의 원수 인가 은인인가?
최근에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에 이어 '나는 가수다까지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화제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이 영웅으로 떠올라 온갖 화제를 낳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우 허각과 백청강은 노래 실력만큼이나 불우한 환경이 사람 의 관심을 받았다. 만약 그들이 환경 탓을 하며 노래를 향한 열정을 접어 두었더라면 오늘날의 그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려운 처지, 불우한 환경은 분명 사람의 기를 꺾어 땅바닥에 주지 않게 만든다. 문제는 계속 그렇게 한탄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일어서서 보란 듯이 꿋꿋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있다. 공자는 인생에서 여러 유형의 사람을 관찰하고서 네 부류로 나누었다.
그 가운데 '곤이불학'은 한탄과 좌절에 익숙한 사람을 나타낸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공 선생이 터놓고 이야기했다. "태어나면서부터는 아는 이가 최상이고, 후천적으로 배워서 아는 이가 그 다음이며, 살다 가 어려움을 겪고서야 배우려는 이는 또 그 다음이다. 살다가 어려 움을 겪고서도 배우려고 하지 않으니 앞뒤 꽉 막힌 사람이 가장 아래니라 "
생은 나다. 태어나다, 생기다의 뜻이다. 어기서는 선천적으로, 태어나면서 부터라는 의미로 쓰인다. 차는 다음. 버금의 뜻인데 여기서는 상에 비해서 뒤떨어진다는 뜻이다. 차다 음에 또 자가 쓰이면 상보다 훨씬 뒤떨어지고 앞의 차보다 뒤떨어 진다는 뜻이다.
곤은 괴롭다. 힘들다, 곤경, 남패, 어려움의 뜻이다. 뭔가 해결하지 못해 쩔쩔매는 상황을 떠올리면 좋겠다. 급하게 연락을 해야하는데 핸드폰이 방전 되었다든지 외국 회사와 계약을 진행하는데 협력자가 부실한 정보를 준다든지 정부가 정책을 내놓았지만 시장반응이 싸늘하다든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나는 등 원전 위험성이 커지지만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것 등등이 곤이라고 할 수 있다. 민은 어원상 눈에 뭔가 찔린 꼴을 나타낸다. 즉 눈이 멀어서 사 리를 분간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이를 계급사관으로 읽어 내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실패를 배우지 않고 곤경에서 교훈을 찾지 않으려 는 사람으로 보자. 곤경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떤 이는 자 신이 그 상황에 놓인 것을 두고 쪽팔린다거나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 한다.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으니 부리나케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럼 나아지는 것이 없다.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이 와도 운 수를 탓할 것이다. 이런 유형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므로 결국 퇴보하게 된다. 설령 뭔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평균보다 늦게 나아가므로 퇴보와 같다. 물론 자신은 퇴보가 아니라고 굳게 항변할 것이다. 이때는 재수가 아니라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할 것이다. 바 로 이것이 보다 뒷걸음질하는 '곤이불학'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곤은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을 일깨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즉 변신의 초대장이다. 예컨대 앞의 경찰관처럼 평소에는 자신에게 검사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곤'을 겪고서야 그 자질을 발견한 것이다. 잔고가 16달러 밖에 없고 구직은 번번이 실패해 생애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 대기 업의 수질 오염을 밝혀낸 실화를 다룬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좋리아 로버츠는 소송을 하면서 변신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관의 초대장에 응하지 않으면 '곤이불학이고 응하면 '곤이학지가 된다.
자신이 '생이지지'가 아니라고 하늘을 탓하고 '학이지지를 도와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원망하며 '곤이학지가 힘들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늘 '곤지불학에 머무른다면, 그 사람은 세상을 향 해 너무 많은 저주를 쏟아내는 사람이 아닐까?
27. 잘지내면서 거들먹거리지 않게
타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인격을 존중하지 않으면 법 과 도덕의 제재를 받는다. 피해자는 기분이 나쁘고 상처를 입지만 법과 도덕의 힘으로 정의를 바로잡을 수가 있다. 그런데 법적으로 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 이 있다. 여럿이 있지만 그중 허영과 비굴이 대표적이다. 사람이기에 자아도취해서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 는 것이다. 가난하면 모든 것이 아쉽고 빠져나갈 길이 없다. 길이 닫힌 것만 큼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있는 사람은 조금 없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가난한 자는 그 조금의 조금을 거저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비굴해지게 된다. 잘 살면, 사람이 없어서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선뜻 이해하지 못한 다.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으면 되지라는 식이다. 또 없는 게 없으 면 뭔가 생길 때마다 봐줘야 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도 회지 와서 돈 좀 모았다고 명절에 비싼 외제차 끌고 고향에 가서 돈 자랑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비굴과 허영은 사람이 감추기 어려운 약점이다. 비굴과 허영은 보는 사람을 씁쓸하게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자공은 우리를 대신해서 말하고 있다. 자공이 생각을 정리하고서 물어봤다. "가난하더라도 있는 자에게 알랑거리지 않고 재산이 많더라도 없는 자에게 뽐내거나 시건방을 떨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공 선생이 일러주었다. 괜찮아 보이네. 그러나 그 수준은 가난하더라도 올바른 길을 즐거워하 고 재산이 많더라도 전통문화를 좋아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네." 자공은 공자의 제자다. 빈은 가난하다. 가난의 뜻으로 물질적 빈궁을 가리킨다. 첨은 아첨하다. 알량거리다는 뜻으로 뭔가 얻을 것을 기대하고 상대 비위를 맞추는 행동을 가리킨 다. 부제는 재산이 넉넉하고 많다. 풍성하다는 뜻이다. 교는 우쭐거리다, 젠체하다. 건방떨다. 뻐기기다는 뜻이다. 사람이 싫어질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직을 지기지 못하고 격 아래로 내려서 있는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사람에게 자존심은 참으로 중요하다. 맹자는 빌어먹는 거지도 자존심을 차린다고 말한다. 거지가 아무리 밥을 빌어먹더라도, 주는 사람이 거지에게 냄새 난다고 거지 가까이에 오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밥 그릇을 발로 툭툭 차서 건네면 거지가 밥을 받아먹지 않는다. 배가 덜 고파서 그랬겠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배고픈 것을 참을 수 없는 만큼이나 비굴하고 처참해지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 다는 것이다.
자공과 공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첫째, 자공은 사람이 최소한 이 것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공 자는 사람이 최대한 이것 까지는 했으면 좋겠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며 큰소리로 떠드는 건 보기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러한 기본마저 되지 않는데 이웃 사랑이니 나눔이니 하는 무슨 커다란 일을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기초만 강조하게 되면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에는 모자랄 수도 있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아도 좋지만 어려운 이웃을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둘째, 사람의 격에는 깊이와 넓이가 있다. 외식을 하면 다시 가고 싶은 집이 있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집이 있다. 음식 맛에서 도 차이가 있고 서비스 집에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이 아니라 열 사람이 비슷하게 생각하다면 음식점 격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만나면 편해서 '다시 보려 해도 주지함이 없는 사람이 있지만 껄끄려워서 다시 보자면 주저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한 사람만이 아니라 열 사람 백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면 사람 의 격에도 깊이와 넓이가 다른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데는 끝이 없다. 업무를 끝내고 퇴근하듯이 인격은 한두 차례 닦고 나면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비굴하기보다는 당당하고, 교만하기보다는 겸손하며, 피해를 주 지 않는 데 멈추기보다는 함께 인문의 가치를 일구도록 '나'를 마름질해야 한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라고 자공의 의도를 생각해보니 공자 당시 에도 빈부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차이가 없다면 차이로 인해 생기는 비굴과 허영으로 상처받지 않을 치료제 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8. 이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형제자매다
친한 사람을 만나서 남에게 쉽게 하지 못한 가슴 아 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친구가 내 말을 듣는 등 마는 등 한다. 그 러면 갑자기 말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된다. 그뿐이 아니 다.세상이 낮설게 느껴진다. 심하면 환멸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세상일을 잊으려고 잠깐 산을 찾게 된다. 산을 오르다 다 리가 쑤시고 무거워지면 장시라도 엉덩이를 둘 곳을 찾게 된다. 이리저리 보아도 적당한 곳이 없다. 그때 지난 태풍에 옆으로 쓰러진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뭇가지에 엉덩이를 붙이고 가쁜 숨을 내 신다. 한참 산을 오르다 보니 목이 마르다. 가져온 물이 바닥이 났 다. 주위에 사람도 없다. 타는 목을 참으며 앞으로 나가다보니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달려가보니 계곡이 있다. 앞뒤 가릴 것 없이 고개를 처박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계곡 물을 마신다. 산이 그냥 산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의 마른 목을 축여주고 나의 아픈 다리를 쉬게 해주는 곳. 산이 나의 모든 응석을 받아준다. 산 이 친구로 다가온다. 사람과의 인연이 모두 끝나서 세상에서 버림받은 기분이 들 때 가 있다. 이제 '나'는 세상과의 창을 하나씩 하나씩 닫아버린다. 그러다가 내가 더 이상 외로움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게 외로울 때가 되면,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내가 땅을 딛고 서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을 느끼게 된다. 이 세상에는 결국 나와 관계없는 '님이 없는 것이다. 자하는 형제를 잃은 친구 사마우가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말을 건네고 있다. 어떻게 건네는지 들어보자.
사마우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모 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 없단 말이야." 자하가 위로하여 말했다. 내가 전해 들은 말에 따르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 부자가 되고 출세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 자율적 인간이라면 많은 바를 조심조심 치리하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주위 사람 들에게 공손하며 전통 의식을 지킨다. 그러면 주위가 넓은 바디와 사막으로 뺑 둘러싸인 안쪽 세상에선 모두가 형제다. 군자가 무엇 때문에 형제가 없다고 울상을 짓고 걱정을 하겠는가?
사마우는 공자의 제자다. 그는 당시 송나라 대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한 환퇴의 동생이라는 설도 있다. 자하는 공자의 제자로 그의 본명은 복상 1#이다. 자하는 제자들 중에 객관 형식으로서 예제를 중시해 훗날 예학에 많은 영향을 쳤다.
독은 홀몸, 외롭다, 홀로의 뜻이다. 망은 없다. 망하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무제와 같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명은 목숨, 운수를 가리킨다. 부귀##는 각각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출세를 가리킨다. 계급사회에서 부와 귀는 짝을 이루지만 계급질서가 무너지면 부와 귀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많이 생기게 된다. 경은 공경하다, 예의가 바르다는 뜻이다. 여제는 무리, 주다, 편들다. 더불어의 뜻이다. 사해형제는 훗날 사해동포주의 세계시민주의를 가리키는 코스 모폴리타니즘의 최초 표현이다. 안증근이 1909년 11월 6일 뒤순형무소로 이감된 직후 검찰관의 첫 신문에 앞서 제출한 「한국인안응 칠소회 글에 보면 이 구절이 나온다. "천생중민, 사해지네, 개위형제 " 그는 여기서 하늘이 낳은 인민이 모두 형제로 지내야 하거늘 일본이 해 이웃 나라를 괴롭히느냐 항의하며 예의 평화론을 설파하려고 했던 것이다. 공자의 말 이 2500년 뒤 안용철의 가슴에서 물음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수중에 없는 물건을 돈을 들여서 산다. 필요하기도 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지금 자신 곁에 있는 것이 소중한 줄은 잘 모른다. 아마 너무 가까이 함께 있어서 그럴 것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무덤덤하더라도 탄생, 수상, 승리, 사랑을 앞에 두고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또 사람은 죽음, 이별, 상실, 고통 을 마주하고서 마음이 들썩이기 쉽다. 늘 함께 있을 것 같던 부모 나 자매 그리고 형제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게 되면 실감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재로 인해 그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깨우치게 된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있을 때 잘하면 될 텐데 꼭 없을 때 아쉬워하며 후회하기 마련이다.
사마우는 상실로 인한 고통을 친구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자하의 위로가 뜬금없어 보이지만 여러 번 음미해보면 어색한 느낌은 줄어들고 많은 의미를 답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하는 먼저 사람에게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 실을 환기 시키고 있다. 사마우만이 아니라 술집에서 환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이나 승리에 도취해서 홍분한 사람들도 모두 상실의 고 등을 겪었거나 겪게 된다. 이로씨 우리는 고통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며 같은 지평에 설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자하는 가족의 상실이 사람을 슬프게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의 조전 때문에 가족을 잃을 수밖에 없지만 오히려 공동선을 통해 새로운 형제를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 현대 사에서 전태일과 박종철은 굵직한 사회 변화를 이끌어냈다. 둘의 어머니 이소선과 아버지 박정기는 자식의 상실에 넋을 놓지 않고 다른 자식을 자신의 품 안에 끌어안는 것으로 슬픔을 승화시켜 민주 주의의앞날을 밝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승화'가 바로 사해형제이 자 세계동포주의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29. 기본을 닦으면 길이 보인다
실패와 불행의 위기가 다가올 때 사람은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 위기가 찾아오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간다. 둘째. 위기의 징후를 느꼈지만 당장 보이는 것만 처리하고 상황을 둘러 깊고 지나간다. 셋째, 위기의 씨앗이 담고 있는 배후를 철저하게 파헤쳐서 문제의 뿌리를 뽑는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위기가 제 모습을 아예 드러내지 못하게 막을 수 도 있으며, 위기를 막지 못하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도 있고, 위기를 만나서 "어떻게 해? 라며 발만 동동구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세민에 국가부도'라는 사태가 일어나 듣도 보도 못한 IMF의 구제 금융을 겪었다. 자산 가지가 떨어지자 평생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반 토막 나거나 자금이 들지 않아 혹자 장 데 기업이 맥없이 쓰러지기도 했다. 위기의 기미가 전혀 없었을까?
"기미를 알아차리고 대비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 이 꼬리를 물었다. 공자 당시에 인간관계의 상하 질서가 허물어지는 사건이 자주 일어나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그의 제자 유자 는 뿌리에서 출발해 사건을 해결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유자가 들려주었다. "사람 됨됨이가 부모에게 효도 하고 형들에게 공손하면서 걸핏하면 윗사람에게 대거리하는 사람 은 드물다. 윗사람에게 대거리하기를 반대하면서 툭하면 공동체(조 직)에서 혼란을 부추기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군자, 즉 자율적 인 간은 기초를 다지는 데 힘쓴다. 왜냐하면 기초가 제대로 서면 나아 갈 길이 눈앞에 생기기(열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효도와 공은 은 틀림없이 사람다움을 여는 뿌리일 것이다." 유 선생은 공자의 제자로 스승과 외모가 많이 많은 적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풍자가 죽은 위에 공자 학파를 이끌 인물로 강력하게 추천되기 도 했다. 제는 원래 중상을 가리키지만 연기소는 공경하다는 제의 뜻으로 쓰인다. 선은 깨끗하다, 곱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드물다. 적다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