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닭이 강아지를 품은 까닭
한문공이 동생행이란 시를 지었는데 그 냉요은 다음과 같다.
회수는 동백산에서 흘러나와 동ㅉ고으로 몰리 내달려 천리를 쉬지 않네. 비수는 그 옆으로 나오지만 천리를 흐르지 못하고 백리쯤 가다가는 회수로 접어드네. 수주의 속현 중에 안풍이 있으니 당나라 정원 연간에 고을 사람 동생소남이 그곳에 은거하며 의를 실천하였도다. 자사가 천거하지 못하니 천자가 그의 명성을 듣지 못하네 벼슬과 봉록은 문 앞에 ㅇ이르지 않고 문밖에 오로지 아전이 날마다 와서 세금을 징수하고 게다가 돈까지 요구하네
아 동생이여 아침이면 나가 밭을 갈고 밤이면 돌아와 옛 사람의 책을 읽어 종일토록 쉬지 않네.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하기도 하고 물에 가서 고기를 잡기도 하는 구나. 부엌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고 마루에 올라가 안부를 물으니 부모는 근심스러워하지 않고 처자식은 원망하지 않는구나.
아 동생이여 효성스럽고도 인자하건만 남들은 알지 못하고 오직 하늘만이 알아 기쁘고 좋은 일을 시도 때도 없이 내려 주시는 구나 집에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개가 밖으로 먹이를 구하러 나가자 닭이 와서 강아지들에게 먹이를 먹이는 구나 뜰에서 벌레와 개미를 추워 먹여도 먹지 않고 강아지는 소리매어 슬피 울기만 하니, 닭이 방황하고 머뭇거리며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다가 날개를 덮어 주고 어미개 돌아오길 기다리는 구나. 아 동생이여 누가 그대의 행실에 버금갈 수 있으리오. 세상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를 괴롭히고 형제간에도 원수가 되며 임금의 녹을 먹으면서 부모를 근심시키는데 이 또한 마음인가? 아 동생이여 그대의 행실에 견줄 이가 없네.
51. 부자가 한결 같았던 유씨 집안.
당나라 하동절도사 유공작은 귀족들 사이에서 법도 있는 집안으로 가장 유명했다. 중문 동쪽에 작은 서재가 있었는데 조회에 참석하지 않는 날이면 매일 이른 새벽에 그곳으로 나가 여러자식들과 중영은 모두 의관을 정제하고서 중문 붂쪽에서 문안 인사를 올렸다. 유공작이 집안 일을 처리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동생 공권과 여러 사촌 동생들과 두 번 모여 식사를 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재를 떠나지 않았다. 저녁 때 촛불을 가져오면 자제 가운데 한 사람에게 경서나 사서를 가져오도록 해서 직접 한번 읽고 나서 벼슬살이나 집안 다스리는 도리는 강론했다. 어떤 때는 글을 논하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거문고를 듣다가 인정서 다시 밤문안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이십 여 년을 했지만 하루도 바꾸는 적이 없었다. 흉년을 만나면 자식들에게 모두 거친 음식을 먹게 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 우리 형제가 단주자사로 있던 선군을 모실 적에 선군은 우리 형제의 학문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고기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나는 감희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고모 누이 누이동생 조카딸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나 남편이 죽은 이가 있으면 촌수가 멀더라도 반드시 사윗감을 택해 시집보내려고 했으며 모두에게 나무에 조각한 화장대와수를 놓아 물들인 무늬 있는 비단을 혼수품으로 마련해 주었다. 그러면서 유공작은 항상.
반드시 혼수품이 풍부하게 갖우어지기리 기다리는 것보다는 시집가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공작이 죽자 중영은 한결같이 그 법도를 지켰으며 작은 아버지인 공권을 아버지처럼 섬겼다. 그래서 심한 병은 아니먄 공권을 뵐 적에 의관을 정제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중영이 경조윤과 염철사로 있을 때에 밖에 나갔다가 거리에서 공권을 만나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단정히 홀을 잡고서서 공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지나간 다음에 비로소 말에 올라탔다. 공권이 늦게 돌아오면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말머리에서 맞이했다. 공권은 그만두라고 자주 말했지만 끝내 중영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고치지 않았다.
공작의 아내 한씨는 상국을 지낸 한휴의 증손녀이다. 한휴 집안의 법도가 엄격하고 검소해 사대부 집안의 모범이 되었다. 유씨 집안에 시집온 지3년이 지나도록 젊은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그녀가 이를 드러내 놓고 웃는 것을 본 적이 없었으며 늘 무늬 없는 비단을 입을 뿐, 화려한 비단이나 수놓은 비단을 입은 적이 없었다. 친정으로 돌아가 부모를 찾아뵐 때는 황금과 푸른 옥으로 꾸민 가마를 타는 대신 대나무로 얽어 만든 가마를 타고 두 명의 하녀만 걸어서 따르도록 했다. 항상 고삼과 황련과 웅담을 갈아 알약을 만들어 자식들이 늦게까지 공부할 때는 이것을 먹도록 주어 애써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도록했다.
52. 키우는 개도 주인을 닮는다.
강주 진씨 집안은 칠백여 명이나 되었지만 매번 식사할 때마다 넓은 자리를 펴놓고 어른과 아이들이 차례대로 앉아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집안에서 키우는 개가 백여마리 있었는데 모두 한 우리 안에서 밥을 먹었다. 한 마리라도 오지 않으면 다른 개들도 먹지 않았다.
53. 봉건적 공동체를 이룬 이씨 집안
온공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나라의 공경들 중에서 선대의 법을 지켜 오래도록 쇠퇴하지 않을 수 ㅇ있었던 집안은 오직 돌아가신 재상 이방의 집안뿐이다. 자손들이 몇대를 거치면서 이백여 명이나 됐지만 함께 살면서 같이 밥을 지어 먹었다. 그리고 토지와 집세로 얻은 수입과 관직의 봉급은 모두 한 창고에 모아 두고 식구 수를 계산해 날마다 식량을 나눠 주었다. 결혼과 장례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일정한 액수를 정해 두고 자식들에게 일을 나누어 맡겨 처리하도록 했다. 이런 법은 대부분 이상국의 아들인 한림학사 종악이 만든 것이다.
수양의 길을 실증한다.
54. 자신에게 솔직한 제우륜
어떤 사람이 제오륜에게 공꼐서도 사사로운 마음이 있습니까? 라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옜날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천리마를 준 적이 있었다. 나는 비록 받지는 않았지만 삼공이 모여 인물을 선발하고 천거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사람이 마음속에 생각났다. 그러나 끝내 등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조카가 지난번에 병들었을 때에 하룻밤에 열 번을 찾아갔지만 비록 한 번도 가서 병세를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행동들에 어떻게 사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55. 부인에게 시험당한 유관
유관은 갑작스런 일을 당하더라도 급하게 말하거나 서두르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유관이 화를 내도록 시험해 보려고 했다. 그가 조회를 나가기 위한 준비를 마친 것을 보고는 계집종에게 고기국을 올리는 체 하다가 고나복 위에 엎질러 옷을 더렆히도록 시켰다. 계집종이 황급하게 엎지른 것을 수습하려 하자, 유관은 말소리나 표정의 변화 없이 천천히 말했다. 네 손을 국에 데었느냐? 그의 송품과 도량이 이와 같았다.
56. 고향에서 예를 지켜라
장담은 근엄하고 예를 좋아했으며 행동거지에 법도가 있었으므로 아무도 보지 않는 방에 혼자 있으면서도 반드시 자신의 몸가짐을 가졌다. 아내와 자식을 만날 때에도 엄한 임금과 같은 태도를 취했으며 마을에 있을 때는 자상하게 말을 건네고 얼굴빛을 바르게 가졌기에 삼보도 그를 본보기로 삼았다. 장담은 건무초에 좌풍익이 되었다. 휴가를 받아 고향인 평릉으로 돌아갈 때에 관청의 문을 보고는 말에서 내려 걸아갔다. 그러자 주부가 앞으로 나와 사또께서는 지위가 높고 덩망이 중후하시니 이처럼 가볍게 행동하셔서는 안됩니다. 라고 말하자 장담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에 관청 앞에서는 수레나 말에서 내리며 임금이 타는 말을 보면 예의를 표한다고 했고 공자도 마을에서도 삼가고 겸손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부모의 마을에서는 극진한 예를 다해야 한다. 어찌 가볍다고 말하는 가?
57.하늘도 알고 귀신도 안다
양진이 천거한 형주의 무재 왕밀이 창읍의 수령이 됐다. 양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황금 열 근을 가지고 가서 바치자 양진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어째서 나를 알지 못하는가?
늦은 밤이라도 아무도 모를 겁니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는이가 없다 말하는가?
라고 양진이 다시 말하자 왕밀은 부끄러워 하며 물러갔다.
58. 잠시도 예를 떠나지 않은 모용
모용이 친구들과 함께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편안히 걸터 앉아 서로 대화하였으나 모용은 혼자 무릎을 꿇고 앉아 공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곽림종이 지나가다가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마침내 그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곽림종은 그의 집에 하룻밤 머물기를 위해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뒤에 닭고기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공양하고 자신은 나물 반찬으로 손님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었다. 곽림종은 일어나 절을 하고는 그대는 어진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이 일로 곽림종은 모용에게 학문하기를 권해 그는 마침내 덕망 높은 인물이 됐다.
59. 도박과 유희는 시간낭비
도간이 광주자사로 있으면서 고을에 일이 없을 때는 아침에 벽돌 백 장을 집 밖으로 옮기고 저녁에 다시 이것을 집 안으로 옮겼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그가 말했다. 나는 지금 중원을 회복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편안한 채로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해이해져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이와 같이 자신의 뜻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힘을 쏟았다. 후에 그는 형주자사가 되었다. 도간은 성품이 총명하고 명민해 관리로서의 직무에 충실 했으며 태도가 공손하면서 예에 일치하고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기를 좋아했다. 온종일 무릎을 모으고 단정히 앉아 변방의 일을 천만가지나 처리하면서 소홀히 하는 일이 없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온 모든 편지와 글에 대해 답장을 썼지만 붓과 글이 물 흐르는 듯 막히는 적이 없었으며 관계가 먼 사람들도 모두 직접 만났지만 문 앞에 머물러 있던 손님이 없었다. 그는 항상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따.
위대한 우임금은 성인이었는데도 일초의 시간도 아까워했다. 보통 사람들도 마땅히 일분 일초의 시간을 아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편안히 놀면서 술 취한 채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있겠는가. 살아서는 당대에 보탬을 주지 못하고 죽어서 후세에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짓이다. 여러 보좌관들 중에 잡담을 하거나 놀면서 일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술잔과 도박기구 바둑이나 장기 등을 모두 가져다가 강에 던져 버리도록 했다. 그런 짓거리를 한 아전이나 장수에게는 매를 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름은 돼지 치는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고 노자와 장자의 허황된 말은 성왕의 법도에 맞지 ㅇ낳으니 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자신의 의관을 정제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 어떻게 머리를 풀어헤치고허황된 생각을 한다고 해서 스스로 크게 통달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60. 중요한 것은 재주가 아니라 품성
왕발 양형 노조린 낙빈왕은 모두 문학 분야에서 뛰어난 병성을 얻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사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배행검은 그들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선비가 원대한 꿈을 의루기 위해서는 도량과 식견을 앞세우고 글재주는 뒤로 해야 한다. 왕발 등은 문학에 뛰어난 재주가 있지만 품성이 가볍게 조급하며 중후하지 못해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난다. 그러니 어떻게 이들이 벼슬을 할 수 있는 그릇이겠는가? 그나마 양형의 성격은 침착하고 안정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수령 정도의 벼슬은 누릴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제명에 죽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 후에 과연 와발은 남해에 빠져 죽었고 노조린은 영수에서 몸을 던졌으며 낙빈왕은 처형을 당했다. 양형만 영천의 수령이 되어 모두 배행검의 말처럼 되었다.
61. 의로움에 용감했던 공감
공감은 의를 행할 때는 마치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는 것처럼 앞뒤를 재지도 ㅇ낳았으며 이익이나 녹봉에 대해서는 나약한 사람처럼 두려워 피하고 겁을 내며 물러났다.
62. 공사를 구별했던 유공작 부자
유공작의 변방의 절도사로 있을 때 그의 아들이 영내로 들어올 때마다 군읍에서는 이것을 몰랐다. 절도사의 영내로 들어온 뒤에는 출입할 때마다 영문 밖에서 말을 내렸으며 막하에 있는 손님들을 어른이라 불러 모두 그의 절을 받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과 웃으며 거리낌없이 대하는 경우가 없었다.
63. 유중영 집안의 가법
유중영은 예에 따라 행동했다. 집에 있을 때는 일이 없어도 손을 모아 쥐고 단정히 앉아 있었으며 중문 안에 있는 서재에서 나올 때에는 항상 의관을 갖추었다. 세 번이나 절도사를 지냈지만 마구간에는 좋은 말이라고는 없었으며 옷에서 향내를 풍기는 일도 없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오면 반드시 독서를 했는데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었다. 유씨 집안의 가법은 다음과 같았다.
관직에 있을 때는 임금에게 상서로운 일이 있었다고 아뢰지 않으며 중과 도사에게 도첩을 발부하지 않으며 뇌물을 받은 관리는 용서하지 않는다. 변방에 나가 있을 때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고아를 돕는 일을 시급하게 여겨야 한다. 물난리가 가뭄 같은 재해가 있으면 반드시 미리 앞서 곡식을 빌려 주되, 군대의 식량 중에서 반드시 좋은 것으로 넉넉하게 주고 체납된 조세는 반드시 면제해 준다. 관사에 역사는 반드시 증축하고 꾸며 화려하고 성대하게 손님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군사를 위로한다 신임 절도사와 임무를 교대할 때는 식량 창고와 비단과 돈을 보관하는 곳간이 처으 부임할 때보다 반드시 더 넘쳐나도록 한다. 영내에 부모가 없는 가난한 양반의 딸 중에 시집갈 나이가 된 아가씨가 있으면 모두 신랑감을 택한 다음 자신의 복읍에서 혼수비용을 마련해 시집보내 준다.
64. 탐용과 권력은 재앙을 부른다.
왕애가 정승읮 ㅏ리에 있으면서 이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두씨에게 시집간 딸이 집에 돌아와서는 옥세공장이가 비녀 한개를 팔면서 모양이 기이하고 정교하다고 70만 전을 요구합니다. 라고 말하며 부탁했다. 그러자 왕애는 70만 전은 나의 한달치 봉급이다. 어찌 너에게 그 돈을 아끼겠는가마는 비녀 한 개가 70만 전이면 이것은 요망한 물건이다. 이 물건에는 반드시 재앙이 따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딸은 감히 다시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몇 달 뒤에 딸이 어느 집 결혼 모임에서 돌아와 왕애에게 말했다.
저번에 말한 비녀는 풍외랑의 아내의 머리 장식물이 됐습니다.
풍외랑은 바로 풍구를 말한다 왕애가 탄식하며 말했다.
풍구가 한갓 낭리로 있으면서 그의 아내는 70만 전이나 되는 머리 장식물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그가 오래갈 수 있겠는가.
풍구는 재상 가속의 문인으로 있었는데 가속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가속의 하인 중에 주인의 심을 믿고 자못 거들먹거리며 은혜를 베풀려는 자가 있기에 풍구가 불러서 주의를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을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새벽 풍구는 가속을 만나러 갔다. 하인 두 사람이 지황주를 가지고 와서 마시라고 주었는데 풍구가 그것을 마시고는 곧바로 죽어 버렸다. 가속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지만 끝내 그가 죽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음 해에 와애와 가속도 모두 화를 당했다. 아 왕애가 진귀한 노리개나 기이한 재화를 요망한 물건으로 여긴 것은 진실로 사리를 꿰뚤어 본 말이었지만 다만 물건의 요망함만 알았을 뿐, 임금의 은총이나 화려한 권력의 요망함이 그런 물건보다 더 심한 줄은 몰랐다. 풍구는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보화를 탐내 자신의 집안을 바로 잡지 못했고, 또 섬기는 사람에게 충성을 다했지만 자신의 몸을 온전하게 보전하지도 못했다. 이것은 할 만한 것도 못된다. 가속은 자신의 하인들이 문객을 담과 행랑 사이에서 해쳤는데도 알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은 오래 부귀를 누리고자 해다 어떻게 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은 비록 하나의 일이지만 우리에게 여러가지 가르침을 준다.
65. 대장부가 품는 뜻.
문정공 황증이 향시, 성시, 정시의 모두 수석으로 합격하자, 어떤 사람이 그를 비꼬았다.
세 번의 시험에서 모두 장원으로 뽑혔으니 평생 먹고 입는 것이야 넉넉하겠습니다. 그러자 공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 평생의 뜻은 따뜻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는데 있지 않습니다.
66. 대장부는 천하를 위해 울고 웃는다.
물정공 방중엄은 젊었을 때부터 절개와 지조가 있었기에 부귀와 빈천 남들의 비방이나 칭찬 기쁨이나 슬픔 등에 한번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느껍게 세상의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일찍부터 그는.
선비는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 전에 근심해야 하며 천하 사람들이 모두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해야 한다.
라는 말을 외우고 다녀싸.
그가 윗사람을 섬기고 사람들을 대할 때는 한결 같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으며 이해관계에 따라 쫒아가거나 버리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방법을 최선을 다한 다음에 그 일에 대해 나 자신은 마땅히 이와 같이 할 뿐이다. 성공 여부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 비록 성현이라도 반드시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데, 내 어찌 구차하게 성공을 말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67. 남에게 부끄럼이 없는 삶
사마온공이 일찍이 나는 남보다 뛰어난 점이 없다. 다만 내가 평생토록 한 일 중에는 남에게 말 못할 것이 없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